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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V데일리 http://tvdaily.asiae.co.kr/read.php3?aid=14902289991223070002
세월호가 마침내 1,073일 만에 수면 위로 모습을 드러냈다.
MBC는 23일 오전 4시47분 선체가 인양되고 있는 상황 현장 영상은 물론 방송사 가운데 최초로 헬기를 띄워 타사보다 가장 가까운 현장 상공에서 보기 좋은 각도로 인양작업을 선명하고 빠르게 방송하고 있다. MBC의 헬기 영상은 이날 오전 6시19분부터 약 15분 이상 세월호 인양 과정을 단독으로 방송했다. 항공 촬영에 최적화된 시스템을 갖춘 MBC 헬기는 타사보다 커 안정적 촬영이 가능했고 선명하고 안정적인 세월호 인양 과정 영상을 송출할 수 있었다.
TV 데일리라는 인터넷 뉴스 사이트에서 퍼왔는데 MBC에게 스폰 받은 기사인게 너무 티가난다.(Sponsered contents)
뉴스 사이트는 광고가 80% 정도를 차지해서 기사만 찾아 읽기도 힘든데 기사조차도 광고성 글이다.
기억난다.
20140416
저 때 난 상병이었다. 다른애들 체력단련 할 때 행정반 믹스커피 맛있게 말아서 담배하나 느긋하게 태우고 행정반 기어들어와서 보급관님께 혼나고 다시 일을 시작하였었다.
보급관님이 보시는 TV는 내 등뒤편에 있었기 때문에 왠만한 내용아니면 돌아 보지 않았다. 목이 아팠기 때문에
갑자기 진도 쪽에서 학생들이 타고 있는 배가 침몰하고 있다는 뉴스가 들려서 보았다.
군대에서 일과가 9시에 시작하니 난 세월호가 처음 침몰하던 시점 즉 처음 전파를 탄 순간부터 모조리 보았다.
그 때 나는 배가 침몰하는 상황인데도 뭔가 차분하고 정적이라는 느낌이었다.
911 테러나 영화에서 보면 침몰이나 이런 사건 사고가 진행되고 있을 시에는
모두 패닉에 비명을 지르고 있고 연기와 불길이 치솟고 사람들은 침몰하는 배를 뒤로 한채 바다로 뛰어들고 하늘엔 구조 헬기들이 여러대 날아다니며 바다에서는 한창 구조가 이뤄지고 있는 시끄럽고 바쁘며 동적인 이미지가 그려진다.
하지만 내가 본 세월호 침몰 당시는 너무 차분하고 정적이었다. 몇몇만이 구조 되고 있었고 바다위에선 구명보트 몇척만 밖으로 나온 승객들을 구조라기보다는 배로부터 인도, 양계 받고 있는 느낌이었다. 하늘에는 취재 헬기 몇대만이 날아다니며 방송을 보도를 위해 취재를 하고 있었다.
그런데 비스듬하고 완만하게 침몰해 있던 세월호가 급격히 기울어지고 바다 밑으로 잠기고 있었다.
앵커와 뉴스들도 팩트 전달 보다는 그냥 ~ 일것 같습니다. 이런 추측성 멘트를 쳤기 때문에 난 모두 구출된 줄 알았다.
그 배안에 수많은 단원고 학생들과 승객들이 타고 있을줄은 꿈에도 생각 못하였다.
그리고 세월호는 점심 먹으러 가기도 전에 선체 대부분이 물에 잠겼다.
난 당연히 구조 됬겠지 생각하고 신경을 껐다.
5시쯤일까 오후일과도 끝날 무렵 행정반에 나밖에 없자 일과를 모두 손 놓고 TV를 요리조리 돌리며 내 자유를 만끽하였다.
그러다 뉴스를 지나치는데 세월호 뉴스였었다. 왠만한 사람들은 구조 됬겠다 생각햇기 떄문에 사고 원인이 뭘까? 하는 마음에 뉴스를 보았다.
오전에는 없던 작은 박스가 뉴스 좌측 상단에 생겼었다. 탑승자의 절반 이상이 실종으로 처리되어 있었다.
구출된게 아니고 그냥 수장당한것이었다.
분명 선장이랑 승무원들은 구출 했다고 봤는데, 법적으로 승객 먼저 구출시키게 되어있지 않나? 아까 그렇게 조용했었는데 그러면 그 아이들은 그냥 침몰하는 배 안에 있었다는 건가?
충격이었다. 충격은 곧 무서움과 공포로 바뀌었고 동정과 연민으로 바뀌었다.
저 안내방송이 희생자 절반 이상을 죽음으로 내몰고 갔다.
구명조끼만 입고 방안에 있어라
그 사이에 선장과 승무원들은 모두 탈출했다. 이건 살인이다.
유튜브 - 단원고 2학년 3반 박예슬 미공개 영상 "살아서 보자"
https://www.youtube.com/watch?v=dVEfPP8zLLc
얼마나 무서웠을까. 검고 시퍼런 물이 KTX보다 빠른속도로 선내로 들어와 자신이 있는 방안을 덮칠 때
얼마나 차갑고 숨가빴을까. 얼마나 고통스러웠을까. 얼마나 두려웠을까.
그 날 저녘 청소 후 저녘 점호 전까지 TV를 볼때 우리 생활관 동기들은 아무말도 하지 못헀다.
평소에 개드립에 섹드립에 욕까지 하면서 힘든 군생활 16개월을 버텼던 우리들은
그날 저녘 점호보고 전까지 아무말도 하지 못헀다.
나중에 알게 된 사실이지만
배가 처음 기울고 침몰되기 시작했을 때
학생들이 갑판으로 달려나가 탈출을 시도했다면 생존률이 비교가 안되게 높아졌을 수도 있을 때
선내에 울려 퍼진
"구명조끼를 입고 방안에 있어라"
이 방송 하나가 실종된 수많은 승객들을 죽였다. 명백한 살인이다.
선장과 승무원들은 뱃사람이고 어찌 될 줄 뻔히 알았기 때문에 모두 탈출하였다.
나 또한 고등학교 1학년 때 4월 즈음에 배를 타고 제주도로 수학여행을 갔었다.
별 볼것 없는 지방 인문계 고등학교였기 때문에 해외는 바라지도 않았고
버스 타고 경주가 아닌 배를 타고 제주도를 건넌다는것 자체가 정말 두근거리고 기대 되고 기뻤었다.
술 먹고 담배 피울것도 아니었지만 그냥 수업, 공부, 숙제, 학원, 부모님과 떨어져 4~5일간 친구들과 자유롭게 지낼 수 있다는게 너무 좋았었다.
배위에서 먹는 엄마의 도시락은 얼마나 맛있을까,
어딜 어떻게 관광할까, 밤에 베개 싸움은 어떻게 이겨볼까,
리조트에서 잔다던데 혹시 다른 고등학교 여자애와 썸이 있진 않을까,
다른 남고 애들과 패싸움이 일어나진 않을까, 먼저자는애 치약 발라버려야지,
사진 찍어서 싸이월드 미니홈피에 올려 조회수좀 높여봐야지 "야 잘좀 찍어봐"
만약 내가 단원고 학생이었다면, 그리고 사고 당시 세월호 배안에 있었다면
난 죽었을것이다.
구명조끼를 입고 덜덜떨면서 괜찮을거야 괜찮을거야를 속으로 반복하며
선내 방송을 믿고 나가려는 친구도 말렸을 것이다.
'야 나가지말라잖아 괜찮어 승무원이 우리한테 왜 구라를 쳐 나가면 다친다 난 안나갈거여'
이렇게 갑판으로 나가려는 친구를 말렸을 것이다.
그리고..
그리고선..
창밖으로 보이는 하얀 하늘이 아닌 짙푸른 바닷물과
천장이 바닥이 되버리는 중력의 반전과
선내로 들이 닥치는 시꺼먼 물을 보며
울고, 부모님을 생각하며, 옆 친구의 손을 꽉잡고 두려움에 떨며 의식을 잃어갔을 것이다.
내 인생은 어땠었나. 재밌는 일 기쁜 일 짜증나고 화나는 일 무서웠던 일 행복했던 일도 모두 있었지.
하라는대로 학원가고 대학교는 서울대 밖에 모르는데 무조건 대학가야된다고 공부 시키던 부모님
난 좋은 효자 아들이 되기 위해 하라는대로 학원 가고 공부했었지. 그런 삶이었지.
세월호를 인양한다고 실종자들이 돌아오진 않는다.
하지만 갈기갈기 찢어진 유가족들과, 사망한 실종자들의 혼을 위로해 줄 순 있을것이다.
세월호 인양을 통해 그들의 넋과 혼을 기리고, 유가족들의 마음이 치유가 되고,
온갖 정치놀음의 오물이 묻어버린 세월호 사태의 진실을 밝혀주길.
2017.03.23